할머니의 불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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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열심히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경비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4동 3/4라인에서 옥상벨이 울리고 뭔가 탄다는 민원이다. 한 번 올라가라는 소리에 소방수신반을 보니
아닌게 아니라 화재경보가 떡 하고 떠 있지않은가?
헐.. 화재가 발생했구나. 뭔가 탄다는 소리에 잔뜩 긴장해서, 전화를 착신으로 돌려놓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입구에서 부터 종이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아.. 제발 큰 일이 아니기를.. 8층으로 올라가니,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걸어나오니, 바닥에 물기와 종이탄 검뎅이 몇 조각이 듬성듬성
보인다.
세대초인벨을 누르니, 뭔가 겁에 질린 할머니와 핀잔하듯이 잔뜩 찌뿌린 얼굴의 주부가
나와 쓰레기통에 불씨가 남아서 잠시 조금 탔다면서 말을 얼버무린다.
복도감지기에는 다행히 빨간 램프등이 들어와있고, 세대에서 의자를 빌려 감지기를 떼낸다음
후 불고서 다시 베이스에 부착하니 다행히 불은 들어 오지않는다.
상황을 보니, 복도에서 종이를 태운것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서 그냥 인사를 하고
옥상에 올라와보니, 옥상출입문옆에 부착해놓은 경보기에서 연신 신호음이 춤을 춘다.
신호음을 리셋해도 원위치로 돌아오지않아서, 하는 수없이 나사를 풀어 전원단자를 탈착하고
나사로 케이스만 복구시키고 다시 8층으로 내려오니, 험상궂은 사내가 손에 쓰레기가 잔뜩든
분리수거봉투를 들고 게염쩍게 인사한다.
시골서 올라온 어머니가 뭘 모르고 복도에서 종이를 태웠단다.
헐.... 연신 표정을 고쳐잡고, 다행히 실화가 아니라 천만 다행이라고 안심시키고
내려오니 사내는 연신 미안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흠냐...
시골서 단독주택만 살다가 아파트란 곳에 와보니, 시골서 살던 생활 그대로 종이를 밖에서
태우려고 복도에서 종이에 불을 부치셨나보다.
그 바람에 위층 아래층 종이타는 냄새로 진동했고, 불이 난거 아니냐는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 온 것이다.
십년 감수한 기분이지만, 복도에서 철부지 꼬마들도 아니고 노부인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쑈킹하고 한 편으로는 우습고, 또 한 편으로 괜히 청승맞고..
복잡한 심정이다.
복도에서 종이를 태우시다니... 그 것도 계단식 아파트에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젊은 부부가 놀라서 한 바가지 가득 물을 담아서 냅다 타는 종이에
물을 끼얹은 것 같고, 못된 짓 하다 들킨 꼬마마냥 겁에 질려서 꿀먹은 벙어리 표정의
노파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쩐지 불쌍하기도 하고...
ㅎㅎㅎㅎ
뭐 그렇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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