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이야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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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twink998 쪽지보내기 마이홈 보기     댓글 0건 조회 292회 등록일 -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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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끝무렵.. 가을 초입 무렵이고 보니 새벽에는 선선하다.

말그대로 열매는 풍성이 익고 꽃은 만개하고 남자는 고독을 탄다는 가을이다.

퇴근하고 집근처에 와보니 밤나무가 풍성하게 자라 있었다.

조만간 토실토실 익을 밤들을 생각하니 근처 야산에 산밤을 주으러 갈 일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길 옆에는 이름모를 야생초며 갈대, 쑥부쟁이, 패랭이, 달맞이들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고, 가을의 전령사 매미들은 신나게 맴맴 울어 재낀다.

벙커에서 돌아오면 늘상 이상하게 눈은 반쯤 잠기고 마음은 마치 잠자기 일보직전

곰마냥 흐릿해져 버리기 일수인데, 그럴때 길 옆의 야생화나 야생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버리곤 한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는데, 뭐 그냥 모른 채 한다.

꽃...

관리소의 꽃이라면 역시 홍일점 경리들 아니겠는가...

여태까지 수많은 경리들과 함께 일을 해 보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리가

있다. 그 누나는 나보다 4살 연상이었고 슬하에 아들내미가 한 명 있엇는데,

전에 잘나가던 은행원이었다고 한다. imf이후 은행이 망하고 시작한게 아파트경리생활이었는데,

박봉에 진상주민들때문에 처음에는 많이도 울고 힘들엇다고 한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남편 월급이라고 해봐야 박봉이라 다시

생업전선에 나와 일하게 되었는데, 이 누나가 일을 얼마나 잘하냐면 소장이 못잡아내는 회계오류는

물론, 갖은 까다로운 잔일도 일사천리였고, 주말에도 일이 있으면 집안일 마다하고 단지로 와서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데, 올때면 꼭 손에 간식거리나 과일을 들고 왓다.

전에는 주말이건 밤이건 행정민원업무로 골머리를 앓앗는데, 이 누나가 온 후 한달도 안되 그런 민원이

눈에 띄게 줄어버리더니, 몇 달 후에는 아예 잔민원자체가 들어오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항상 전화를 받을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당직기사님들 힘드시니까 평일날 모든 일을

깔끔히 정리하고 주민들을 상냥하게 계도한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하였단다. 평일에도 왠만한 일은 스스로 판

단해서 일거리를 줄여나갔고, 할 일없이 소일하거나 단체로 일할 일이 생기면 여자임에도 목장갑을 끼고

일을 거들어 주던 여장부였다.

그 때는 내가 젊어서 잘 몰랐는데, 후에 다른 단지로 가보니 그 누나가 얼마나 대단한 누나인지 알게되었다.

그 덕일까.. 주 말이면 쉽게 모이기 힘든 가족모임단위로 근처 파전집에서 맛걸리도 잘먹었고, 가끔 노래방도

자주가서 놀았고.. 일요일날에는 식구단위로 낙시하러가서 삼겹살구이도 잘해 먹었다.

딱딱한 남자들만 있는 관리소안에서 홍일점 누나의 역활은 실로 사막의 단비였고, 콸콸솓는 맑은 샘물이었던

샘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누나는 꽃중에 꽃이엇던 듯 싶다.

그것도 아주 향긋한 백합화같은 꽃...

최근에 궁금해서 근항을 알아보니, 몸이 아파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단다. 그 누나 남편되는 형님은

댐에서 근무한단다. 대청호 댐 관리사무소인가.. 어쨋든 소원대로 된 듯 싶다. 물맑고 공기좋은 자연풍광속에

잠긴 곳에서 근무하는 즐거움이란..... 뭐든지 향기가 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도 새도 나무도 동물도

주위를 즐겁게하고 행복하게 해주는건 틀림없는 사실인것 같다..

한때나마 각박한 관리소의 한 송이 향기나는 꽃이었던 누나의 쾌차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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