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이야기

첫 시설을 서무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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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twink998 쪽지보내기 마이홈 보기     댓글 0건 조회 461회 등록일 -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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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저리 추저리 내리는 날이면 첫 시설직장의 소소한 즐거움과 애환이 떠오른다.

첫 시설직장은 사실 경력도 실력도 쥐뿔도 없던 무경력자로 운좋게 건물주였던 소장님의 도움으로

들어간 자리라 싫던 좋던 버텨야만했던 직장이었다.

처음 간 곳은 지역난방의 아파트였는데, 이 단지는 허구헌날 주민들 데모질에 업체사장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직원들은 서로 각자플레이에 소장은 오던말던 너는 너구 나는 나다 하는 식의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던 곳이다.

처음 내가 맡은 직이 하필 서무였다.. 경리누나 옆에 앉아 출납을 보조하던 서무...ㅎㅎㅎㅎ

아무것도 모르는 머슴아가 여자들이나 하던 서무를 옆에서 앉아 하고 있으니, 맞교대하던 노인기사들의

냉소는 둘째치더라도 경리누님의 신경질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한 번은 입주민이 이주정산을 하러 왔다. 마침 경리누님이 자리를 비워서 내가 하게 되었는데,

이건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가르쳐주긴했는데, 대가족할인도 해줘야하고 , 장충금도

정산해줘야하고, 그리고 전기랑 수도요금도 정산해야하고, 숫자 몇개만 정리해서 그대로 엑셀로 뽑아

주면된다고 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버버버버버버버... 아... 그게.. 버버버버버..

그러자. 입주민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 혹시 정산 할 줄 몰라요..?'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그 표정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더라.. 그러자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경리누님이 구세주처럼 나타났고,

내 눈에는 오.. 할렐루야.. 가 절로 나오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

경리누님은 일사철리로 일을 마치고 나를 뒤로 한 채 바로 소장실에 가서 ' 저 어리버리한 애숭이를

내보던지, 나를 자르던지 양단간에 결정하라' 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오..

그래도, 소장은 한 달만 지켜보자면서 어르고 달래 겨우 자리로 돌려보냈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나서 나에게 말했다. ' 조만간 옆단지에 시설기사자리가 나면 거기로 가라. 여기 경리가 영

맘에 안들어하니 그럴 수 있겠냐?' 고 물었고, 나는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리고, 야간에 당직을 함께 서라고 해서 그날 지하 벙커란 곳에 처음으로 노인기사랑 함께 잠을 잤다.

들어서자마자 퀘퀘한 이불썩는냄새부터 역한 타르냄새.. 더 가관인것은 이 노인기사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않는다. 밤에 걸려오는 민원전화를 안 받다가 두 번째 울리면 그때서야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고

자리를 비우고나서 다시 들어오기전에 담배 한대 물고 투덜거리며 자기 침낭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날 그러한 대도 나는 잠을 잘잤다. 꿀잠이었다.. 다음날부터 주민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관리소앞에

업체사장과 동대표임원들 모두 물러나라고 피켓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두 과장은 어디다가 전화를 해대는

지 .. 아마 다른 사업체를 알아보는 눈치더라.. 남은 노인기사 둘과 경리는 도시락을 싸와서 구석에서

말도 없이 밥을 먹고, 나는.. 오.. 이런게 시설인가 하고 빠꿈빠꿈 눈을 껌벅이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해서 소장과 과장 둘사이의 험악안 욕지거리와 주먹다짐 일보 직전 상황

까지갔다가 남은 직원들이 만류한 끝에 겨우 진정된 자리서 냄새가 엄청구린 염생이 한 점도 못먹고 온 적도

있고 우쨋든 한 달후에 임대에서 분양으로 전환된 주공아파트에 설비기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것도 오겠다는 사람이 안와서 부랴부랴 소장이 대타로 부르는 덕에 어영부영...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 그 것이 내 시설에서의 첫 행보였다..

서무로 시작하다니... ㅎㅎㅎㅎ

지금 생각하면 방실방실 웃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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