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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공 시인 이면우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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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nigimi 쪽지보내기 마이홈 보기     댓글 0건 조회 427회 등록일 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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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공 시인’ 이면우(52)씨의 18평 아파트 거실엔 작은 성찬이 마련돼 있었다.
‘서울 손님’ 대접한다고 특별히 다진 소고기를 얹어 자글자글 익힌 두부찜에다,
가을볕에 꾸덕꾸덕 말렸다가 햇고추장에 무쳐낸 산도라지며 배추나물이 소담하게 올랐다.
제주 사는 먼 친척이 보내온 바닷물고기로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을 두고 이씨는 공연히 아내에게 투정을 부렸다. “이 물고기는 이렇게 요리하는 게 아닌게벼. 비싼 생선 같던디, 그냥 구워먹을 걸 그랬네벼.” 남편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미례(49)씨는 입안 가득 밥을 밀어넣은 채 빙글빙글 웃고, 한창 사춘기라 도통 말이 없는 중학생 아들 상윤(14)이가 엄마 대신 아빠를 나무랐다. “맛있기만 하네. 괜히 손님 오시니깐….”
그러나 이씨만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도 세상에 드물었다. 비록 남의 분식집을 전전했을지언정 어느 틈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낸 데다, 최근엔 간병사 수업을 받고 동네병원에
일자리를 얻은 아내다. 1300만원 조금 넘는 자신의 연봉 갖고는 중학생 아들녀석의 뒷바라지가 얼마나 힘들 텐가. 고정된 직장 없이 남편이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노동판을 전전하며
푼돈을 벌어올 때도 불평 한마디 한 적 없는 아내는 이래저래 귀한 보배였다.

“제가 중학교 중퇸데 고졸이라고 속이고 결혼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건 꼬딱지만큼도 없었대요. 썩 듣기 좋은 소린 아니지만 이 사람 아니었으면 오늘 같은 영화 못 누리지요. 가난도 생의 일부로 당차게 껴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 아내입니다.

18평 ‘내 집’에서 사는 영화(榮華)를 얻기까지 이들의 삶은 가난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건설현장 일이 뚝 끊기는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부부는 대청호변 산자락으로 들어가 버섯농사를 지었고, 신문배달에 식당 아르바이트를 되풀이했다. “아빠도 회사에 다니면 안 되냐”는 어린 아들의 소망으로 겨우겨우 구해 들어간 중소기업 보일러실에서 ‘IMF 실직자’가 됐을 때 아내는 남편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여보. 팔다리 멀쩡한데 꿀릴 게 뭐 있어?”

시를 쓰게 된 것도, 그래서 어느새 세 권의 시집을 내고 서울로 부산으로 강연을 나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내 덕이다. 박용래의 시를 우러르며 밤마다 불기 없는 윗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낡은 타자기에 시어(詩語)를 새겨대던 남편. 공사판에 시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건설회사 사장이 첫시집 ‘저 석양’을 출판해준 것이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아내는 이웃에 사는 미술교사에게 남편의 시집을 선물했고, 결국은 서울의 유수 출판사에까지 연이 닿은 것이다.

들큰한 땀내 진동하는 그의 대표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읽고 목젖 뜨거워지지 않을 사람 누구일까. “가난을 지독히 경험하고 나면 숨만 붙어서 모든 걸 보고 만질 수 있는 자체로 행복해진다”는 그는, 오히려 ‘유명인사’가 되자 긴장이 사그라지고 삶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3층짜리 오래된 아파트의 맨 위층, 화장실 천장을 뚫어 지붕과의 사이에 서재를 만들어놓은 것은 이씨에겐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문학전집, 문예지 등 2000여권의 책이 빼곡히 들어찬 방. 이곳에서 그는 책을 읽고 시를 쓴다. 그래도 그는 시인이기 전에 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육체노동자였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맑아지는 거라고, 그래서 상윤이가 태어났을 때 끊은 술담배를 한번도 입에 댄 적이 없고, 밖에서 한끼 밥을 먹어도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 하는 결벽을 지녔다. 간병사가 되어 이튿날 새벽에나 들어오는 아내를 대신해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도 그다.

“우리 부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건강한 육체, 그리고 열심히 사는 모습뿐이지요. 어떤 자리든 그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거,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쳐 살면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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